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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여름 햇살과 녹음 속, 천 년 고찰의 숨결을 만나다

개미날자 2025. 8. 12. 15:29

 

경북 영주 부석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대표 사찰입니다. “부석”이라는 이름처럼, 전설 속 ‘떠 있는 돌’이 지금도 남아 있어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 저는 녹음이 우거진 부석사를 찾았습니다.

■ 푸른 숲길을 오르다

부석사는 해발 약 292m 봉황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주차장에서 절까지는 완만한 오르막과 계단이 이어집니다. 한여름이라 땀이 금세 맺히지만, 양옆으로 뻗은 나무들이 커다란 그늘을 드리워 뜨거운 햇볕을 막아줍니다. 숲 속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귀에 들어옵니다.

길을 오르다 보면, 바람 사이로 스치는 솔향과 흙냄새가 느껴집니다. 한참을 걷다 보면 ‘부석사’라 새겨진 웅장한 일주문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순간, 마치 세속의 소란을 뒤로하고, 고요한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 무량수전과 여름의 빛

부석사의 상징인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입니다. 여름의 무량수전은 유난히 선명합니다. 깊은 초록 숲 사이로 고목들이 둘러서 있고, 그 위로 얇게 내려앉은 햇살이 기둥과 마루를 황금빛으로 물들입니다.

무량수전 앞마당에 서면, 서쪽으로 탁 트인 소백산 자락과 들녘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여름 구름은 유난히 크고 느리게 흘러가, 그 그림자가 들판을 차례차례 덮고 지나갑니다.

전각 안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무량수전의 어둑한 내부와 바깥의 눈부신 여름 햇살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어, 불상을 더욱 은은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 의상대와 부석의 전설

무량수전 옆 오솔길을 따라가면 의상대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부석사와 그 너머의 들판, 멀리 소백산 능선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입니다. 여름날엔 푸른 논과 숲이 빽빽하게 펼쳐져,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집니다.

이곳에는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전설이 전해집니다. 중국 유학 시절 의상대사를 연모하던 선묘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용이 되어 대사를 지켰고, 부석사 창건을 방해하던 악귀를 떠 있는 돌, 즉 ‘부석(浮石)’으로 물리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절 한편에 놓인 부석은 땅에 완전히 닿지 않고 약간 떠 있는 듯한 모습이라, 여름날에도 묘한 서늘함을 전합니다.

■ 국보와 보물들

부석사에는 무량수전 외에도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무량수전 앞의 석등(국보 제17호)은 햇볕 아래 은은한 회색빛을 띠며, 섬세한 조각이 세월의 결을 보여줍니다. 그 옆의 삼층석탑은 단아하면서도 안정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천왕문 안의 사천왕상은 여름의 강한 빛을 받아 더욱 역동적으로 보입니다. 나무 표면의 색이 짙게 물들어 있어, 오래된 나무 향이 은근히 감돕니다.

■ 여름의 부석사 산책

부석사는 전각마다 작은 길이 이어져 있어 산책하기 좋습니다. 선묘각, 조사당, 범종각 등을 차례로 둘러보며 나무 그늘 아래 잠시 쉬어가면, 매미 소리와 종소리가 겹쳐 들립니다.

여름의 부석사에는 꽃 대신 초록이 주인공입니다. 연못에는 연꽃이 활짝 피어 있고, 잎 위에 맺힌 빗방울이 햇빛에 반짝입니다. 대웅전 뒤편 숲길로 들어서면, 바람결에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시원한 배경음악처럼 들립니다.

■ 내려오는 길

부석사에서 내려오는 길은 한층 여유롭습니다. 올라올 때는 땀을 식히려 부채를 부쳤지만, 내려갈 때는 산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자연스레 열기를 식혀줍니다. 멀리 보이는 초록 들판 위로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며, 논과 밭이 물결처럼 흔들립니다.

주차장에 도착해 뒤돌아본 부석사는, 여름 하늘 아래 더욱 단단하고 고요해 보입니다. 그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다음엔 초겨울의 부석사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방문 팁

  • 위치: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 입장료: 성인 3,000원 (문화재 관람료 포함)
  • 추천 시간: 오전 이른 시간이나 오후 늦게 방문하면 여름 햇볕을 피하고 더 시원하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 주차: 사찰 앞 주차장 이용 가능(유료)
  • 주변 여행지: 소수서원, 선비촌, 소백산 국립공원

부석사는 여름에도 그 고즈넉함을 잃지 않는 천 년 고찰입니다. 푸른 숲과 맑은 하늘, 그리고 오랜 세월이 만든 건축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그 안에 서면 마음이 절로 차분해집니다. 여름의 부석사에서 저는 더위 속에서도 바람과 그늘이 주는 평화를 배웠습니다.